명지대학교 정보
사랑과 진리 그리고 봉사라는 이념을 가지고있다. 대한민국 사립대학교입니다. 설립자는 방목 유상근입니다. 1948년 9월 7일 서울고등가정학교로 개교했습니다. 이후 1963년 12월 16일 명지대학으로 변경되었다. 그리고 1983년 9월 8일 명지대학교로 개교하였습니다. 서을특별시 서대문고 남가좌동에 위치하고있습니다. 자연캠퍼스는 용인에 위치하고있습니다. 12대 총장은 유병진입니다. 1948년 개교한 명지대학교는 1963년 현재의 4년제 대학으로 승격되었다. 용인자연캠퍼스는 1979년 준공되어 종합대학으로 탈바꿈하였다. 명지대학교의 역사는 1948년 무궁화대학교의 인가를 받아 서울고등학교에 설립되었다고 여겨진다.서울고는 본교와 특화과정이 있으며 김재준 박사가 초대 교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가정학부, 국문학부, 영문학부를 가지고 있습니다. 서울고는 1950년 2월 29명의 졸업생을 배출했고, 이후 초등학교로 승격할 때까지 졸업 기록이 없다. 서울고등학교는 1952년 한 단계 승격해 여성전문대학으로 거듭났고, 이듬해 12명의 졸업생이 탄생했다. 당시 직업학교 시절부터 내려오던 가정학과 외에 한국문학과와 영어영문학과가 있었다. 1954년에는 73명의 졸업생들이 가정학을 졸업했다. 명지대학교의 실제 전신이다. 1963년 서울문학사범대학이 현재의 4년제 대학으로 승격되면서 명지대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서울예술과학대학교는 1962년에 국어, 경영, 행정, 전기공학, 명지대 4개 학과를 신설하였다. 또한 명지공대의 주요 학과들은 토목, 건축, 화학공학이 될 것이다. 1967년 대학원이 설립되면서 대학들이 대학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1970년대 후반부터 역사, 경제, 수학이 자리 잡았다. 그러나 정부의 수도권 개발 정책으로 인해 대학 육성이나 신입생 충원이 어려워 1979년 용인캠퍼스 건립이 시작될 예정이다. 1983년, 그는 대학으로 승격되었고, 명지대학교가 되었다. 1983년 명지대학교가 설립될 무렵에는 1만 4천 명의 졸업생이 있었다. 인문학과는 이제 서울에만 있고 용인에만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지만, 용인캠퍼스에 인문학관이 있었다. 본과를 용인대학교로 옮긴 명지대학교는 1983년 마침내 4년제 대학으로 인정받았다. 당시 4년제 대학은 대학 규모에 따라 2개 분야로 나뉘었다. 대학과 대학교는 2년제 단과대학으로 나뉘는데, 2010년대 초반까지는 대학교라고 불렸다. 1983년부터 1989년까지 용인에서 운영되던 명지대학교가 명지대학교 인문학과 학생을 모두 서울캠퍼스로 소환하여 현재의 이중캠퍼스 제도를 완성하였다. 당시 용인대학교 학생들은 서울캠퍼스의 주간화를 강하게 반대하였다. 서울캠퍼스가 구성되면 입학하는 용인캠퍼스 학생들은 분교로 처리된다. 다만 명지대는 본부에서 계속 운영이 허용되는 조건으로 인문학부를 서울로 소환할 수 있게 돼 각 학과별 이중 캠퍼스가 됐다. 1991년 명지대 경제학과에 재학 중이던 강경대가 강경대의 구타와 사망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 결과 대학생들의 자살 등 제6공화국 내 시위가 형성되었다. 2019년 파산 신청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좋지 않음에도 대학 재정 규모 자체는 나쁘지 않다. 표에 따르면 명지대 재정규모는 크게 비정상적이지 않다. 명지대학교는 국민대학교의 예산이 있다. 명지학원이 학교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학교 예산은 연간 2000억원이 넘는다. 학교 운영에서 기업의 도움은 절대적인 것으로 여겨지지만 대부분의 학교가 예산에서 차지하는 지분이 1% 미만이고 자체 수입으로 운영되고 있다. 다만 명지대는 재정적인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재단은 500억원이 넘는 인문학 캠퍼스 단지 조성에 따른 공사비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어반캠퍼스 건립은 "이렇게 큰 규모의 토목사업이 어떻게 부도가 날 수 있느냐"고 광고했지만 불합리한 상황에서 사업이 진행된 것으로 드러났다. 또 학교 재정 문제 외에도 파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립학교재단법에 따라 법인이 파산선고를 받으면 학교는 교수를 폐지한다. 2009년 4월 인권위는 기업들에 사태 해결을 위한 노력을 촉구했고, 학생들도 '벽지 운동'과 청원에 참여했다. 우려와 달리 명지대는 2009년 9월 종합재정지원대학으로 선정돼 2009년 말 대학 평가와 운영에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 문과대학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자연과학대학은 용인시 처인구에 위치하고 있다. 명지대학교는 인문계(인문학, 사회과학, 경영학, 법학, ICT 통합, 미래통합)와 자연계(자연과학, 공학, 건축, 예술스포츠, ICT 통합)를 분리하는 이중 캠퍼스 정책이다. 인문학캠퍼스에 등록된 학생 수는 10,090명으로 자연캠퍼스 8,710명보다 1,300명이 더 많다. 학생들은 인문학 캠퍼스를 "캠퍼스"라고 부르고 자연 캠퍼스를 "셀프 캠퍼스"라고 부릅니다. 또한 인문학 캠퍼스는 솔감 또는 서울 캠퍼스, 자연 캠퍼스는 용감 또는 용인 캠퍼스라고 불립니다. 원래 명지대는 규모가 작아 정원을 늘리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따라 1979년 현재의 명지대 자연캠퍼스가 완공되어 주간대학 전체가 이곳으로 이전하였으며, 1983년 종합대학으로 인정받았다. 대학 측은 서울캠퍼스 주변 땅값이 급등하고 명지대, 명지전문대 등의 토지 매입이 이뤄졌는데도 캠퍼스 확대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한마디로 좁은 지역의 학생 수 증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대학들이 낮에 본부와 대학을 용인으로 옮겼다. 이에 따라 서울캠퍼스는 일시적으로 야간대학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정권이 바뀐 1987년 문과가 서울로 이전하면서 현재의 이원화된 캠퍼스 시스템이 인가되면서 정원이 확대되어 4년제 대학으로 승격되었다. 총장의 집무실은 인문학 캠퍼스와 자연학 캠퍼스에 모두 위치해 있다.